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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추계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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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17-11-02 06:58 조회2,88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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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영학회 추계강좌가 10월 17일 (화) 10:30 - 14:00시까지 삼성교육문화회관 806호에서 131명의 동문들이 참석한 가운데 성공적으로 개최되었다.

윤유정 ('76) 부회장의 사회로, 찬송 302장과 성혜옥 ('70) 동문의 기도에 이어 김혜정 ('72)회장의 인사가 있었고, 강연은 '셰익스피어 이노베이션: 시대와 삷과 예술'이라는 새로운 주제로 진행되었다.

연극사 박사인 강태경 교수는 이화여대 영문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며 이대 언어교육원장과 통번역대학원장을 역임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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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  셰익스피어는 모든 언어, 문화와 정치를 넘어서는 만국공통어이다.  ‘햄릿’은 전세계적으로 하루 평균 800편씩 상연되고 있는 바, 셰익스피어는 미래사회의 창조적 경제라 할 수있다.  ‘햄릿의 'innovation' (혁신)은, 당대에는 잘 쓰이지 않던 단어인데, ‘새로운 것을 취하기 위해 묵은 것을 뒤엎는다’는, '혁신'보다는 '혁명'의 의미를 지닌다.

그는 18세라는 어린 나이에 결혼하여 딸을 얻었고, 중등교육도 마치지 못했으며, 시골 출신으로 런던으로 상경하여 배우에서 극작가로 부를 축적하게 된다.  아들을 잃고 아버지를 동시에 잃은 트라우마 속에서 만들어진 작품이 ‘햄릿’이며, 44세의 나이에 ‘Tempest’를 끝으로 무대에서 은퇴하여 고향에서 평온한 말년을 보낸다.  당시 연극은 고수입이 창출되는 신 산업으로, 그는 모든 장르를 어우르며 38편의 작품을 내놓아 큰 성공을 거두었다.

'햄릿'의 첫 대사인 “누구냐?”는, 영국의 황금기를 이끈 엘리자베스 여왕 이후 미래가 불확실한 시대, 중세에서 근세로 넘어가는 대변혁기의 과도기적 상황에서 “나는 어디에 서있는가?” “나는 누구냐?”라는 의미와 오버랩 된다.  여기서 그는 작가로서의 입지를 되돌아보는 입장을 취한다.  보초병에 자신의 입지를 동일시하여 불확실한 상황을 응시하는 셰익스피어는 시대의 파수꾼이다. 그는 폭넓은 독서를 통해 200년의 역사를 통찰하고, 역사적 상상력을 발휘하여 작품세계를 구축하였다.

영국은 엘리자베스 여왕의 45년간의 현정으로 유럽의 변방에서 초강국으로 등극하는 Golden Age를 맞게 된다.  피의 투쟁이 아닌 중재. 절충. 통합을 통한 종교 통합을 꾀하고, 결과적으로 국민통합을 이끌어냈다.  권력의 주축에서 온건파와 강경파의 balancing에 힘썼고, 강호 스페인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으며, 평민출신의 인재를 등용하여 사회적 유동성과 계층상승의 기회를 만들어냈다.  여왕의 soft power의 능력은 성경이나 그리스 로마문화와 같은 고전에서 기인하는 관용과 수용을 겸비한다.  선대의 문예부흥을 꽃피웠으며, 여왕 자신이 문예인이기도 했다.  ‘I’ 시대정신의 요체인 르네상스의 재탄생을 이뤘고, 이는 중세와 근대의 결렬점이 되었다.  사라진 좌표에서 ‘나는 누구인가?’, ‘Who am I?’의 문제가 제기되었다.

셰익스피어는 영국의 위상이며, 사회적 유동성, 획일화가 아닌 다양성,을 품는 통합적 이름이다. 당시 런던은 사회적 유동성에 기인하여 명실상부 파리에 이어 유럽 제 2도시로 등극하게 되었고,  이때 연극이 신 산업으로 부상했다.  제임스 버비치의 ‘Theater’는 초기의 아마추어 연극인회에서 최초의 상업극장으로 변신했다.  셰익스피어는 상경하여 잡일을 하는 중에도 독서를 게을리하지 않았고 덕분에 우연한 기회에 단역으로 무대에 오르게 되고, 27세의 늦은 나이에 ‘헨리 6세’로 데뷔하여 큰 성공을 거둔다.  1599년에는 작가 겸 배우로 ‘Globe Theater’를 만들고, 그의 절정의 작품들이 탄생하게 된다.

셰익스피어는 오늘도 살아있다.  극장을 통해 모든 계층이 한 곳에 모이게 되고, 성경에 국한되었던 주제에서 벗어나 인간적 신들, 인간의 위대함을 부각시키는, 인간이 주체가 된 이야기가 다뤄졌다.  그는 당대 최고의 극작가였다.  단순히 문학적 상상력이 아닌, 민심을 잘 알고 사람의 체취가 느껴지는 더욱 인간적인 작품을 썼다.  그의 작품에는 거시적 시대배경이 녹아 있다.  그는 배우이며 작가였고, 항시 피드백을 중시했으며, 협업의 소중함을 꾀했다.

‘Innovation’ -  당대 최고의 극작가였던 크리스토퍼 말로가 르네상스의 영웅들을 그려 인간 예찬의 전통을 이어간데 반해, 그는 트렌드를 깨고 ‘추락하는 인간’을 그리는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어냈다.  트렌드가 ‘대세’라면, 이를 깨는 것이 ‘innovation’이다.  그는 이면을 보는 작가였으며, ‘헨리 6세’에서는 지배층내의 내분, 탐욕, 동족상잔의 비극, 권력에의 비판을 그렸고, ‘리처드 3세’에서는 권력투쟁으로 인한 민중의 반란을 다뤘다.  트렌드를 버리고, ‘자기성찰’을 다룬 전혀 다른 성격의 후기 사극을 선보였다.  ‘리처드 2세’와 ‘헨리4세’에서는 왕이 아닌 군주 주변의 인간들을 다루고 있으며, 서로 다른 요소들이 공존하는 그의 희비극적 비젼을 제시하고 있다.  ‘헨리 5세’는 엘리자베스 여왕이 노쇠하여 세실리아 집안이 집권하면서 이제까지의 균형이 무너지고 우울해진 사회 분위기에서 만들어졌다.  여왕 사후 제임스왕 즉위 후, 사회적 분위기가 급변하여 사회적 유동성은 쇠퇴하고 계급 특권구조가 고착화되는 양극화의 세계가 도래했다.  그의 후기 비극들은 장년이후의 주인공들을 다루고 있으며, 그들을 둘러싼 잔혹한 세계가 사실은 자신이 만든 세계이며, 결국 그것에 의해 자신이 대변하던 사람들에 의해 추락하게 되는 비극적 인물들을 그리고 있다.  실제로 혁명이 발발했고, 그는 ‘템페스트’를 끝으로 낙향하여 편안한 여생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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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동문소식 및 광고로 행사는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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